염증은 나쁜 것이 아니다 — 만성염증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것들
염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대부분은 반사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피부가 붓고 빨개지는 것, 몸에 독소처럼 쌓이는 것. 그런데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 생각을 꽤 많이 수정해야 했다.
교수의 설명은 단호했다. 모든 염증의 의도는 착하다. 염증은 원래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다. 결과가 나쁘게 나오는 건 염증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염증을 잘못 다룬 탓이라는 것이다.
만성염증은 증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찌뿌둥하거나 무기력할 때 "혹시 만성염증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한다. 그런데 이승훈 교수는 여기서 명확히 선을 긋는다. 만성염증이 있다고 해서 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뇌졸중이 대표적인 예다. 뇌졸중은 경고 신호 없이 그냥 망가진 상태로 찾아온다. 혈관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손상되고 있었던 것인데, 본인은 전혀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게 된다.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혈관을 직접 망가뜨린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쌓인 고혈압·당뇨·고지혈증이라는 물리적 조건 위에 스트레스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터지는 것이다.
만성염증은 소리 없이 쌓인다. 증상을 기다리다가는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의 만성염증, 원인은 비만과 과잉 칼로리
그렇다면 만성염증은 왜 생기는가. 이승훈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비만, 정확히는 내장지방을 꼽는다.
내장지방은 단순히 배가 나온 것이 아니다. 지방세포가 비대해지면 우리 몸의 호르몬 균형이 무너진다.
정상 상태에서 지방세포는 염증을 완화하는 호르몬과 악화시키는 호르몬을 균형 있게 분비하는데, 살이 찌면서 지방세포의 부피가 과도하게 커지면 이 균형이 깨지고 염증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 여기에 인슐린 신호 전달 장애가 겹치면서 당뇨로 이어지고, 당뇨는 다시 비만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인데, 그 이유가 단순히 의학의 발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칼로리가 과잉 공급되면서 감염에 맞서는 면역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과잉 면역이 이번에는 만성염증의 씨앗이 됐다. 우리는 굶어 죽는 시대를 벗어난 대신, 넘쳐나는 에너지로 스스로를 천천히 태우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거친 음식과 적당한 운동, 그리고 깊은 수면
그렇다면 만성염증을 줄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음식에 관해서 교수의 논리는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은 이미 소화가 다 된 상태로 들어온다. 정제된 흰쌀, 부드러운 빵, 설탕물 같은 음료는 몸이 할 일을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
반면 통곡물처럼 거친 음식은 소화 과정에서 몸이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만큼 혈당도 천천히 올라간다. 맛없는 음식의 식감을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만성염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라는 말이 귓가에 남는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을 기본으로 하되, 하루 7,000보 이상은 움직이는 것을 최소 기준으로 삼는다. 무산소 운동이 좋다는 것은 맞지만 나이와 신체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강도 높은 운동을 무조건 권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수면. 교수가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다. 우리가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뇌에서는 글림프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낮 동안 쌓인 노폐물, 특히 치매의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찌꺼기를 청소한다.
그런데 이 청소부는 얕은 수면 상태에서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잠들기 전 두 시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술로 억지로 잠을 청하는 습관도 그만둬야 한다. 술은 의식을 끄는 것이지 깊은 잠을 만들지 않는다.
내 몸의 염증 상태를 숫자로 확인하는 법
이승훈 교수가 책을 쓰면서 직접 연구했다는 지표들이 있다. 일반 건강검진에서는 잘 해주지 않지만, 알아두면 유용하다.
첫째는 **hsCRP(고감도 C반응단백)**다. 간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로, 우리 몸의 염증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국내 기준으로 0.2 이하가 정상이며, 이를 넘으면 만성염증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 일반 혈액검사 시 의사에게 따로 요청해야 측정이 가능하다.
둘째는 당화혈색소다. 6.0%를 넘으면 당뇨 전단계로 보고, 만성염증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셋째는 허리둘레다. 남성 95cm, 여성 85cm를 초과하면 내장지방 과다로 본다.
넷째는 혈압이다. 130/85를 넘으면 주의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중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으면 0단계, 하나라도 해당되면 1단계로 관리가 필요한 상태다. 매년 이 수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만성염증이 심각한 질환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교수는 말한다.
염증을 이기려 하지 말고, 달래라.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자극이 됐는지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만성염증과의 긴 싸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교수의 말이 오래 남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생각보다 작고 조용하다. 그래서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