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줄이고 생명력을 깨우는 법 — 체액, 호르몬, 그리고 약의 본질
몸이 조금만 이상하면 우리는 곧장 약을 찾는다.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 알레르기가 올라오면 항히스타민제.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약이 증상을 잠재워 주니까 그게 치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년간 약국을 지켜온 이지 약사의 유튜브 강연을 듣고 나서 그 생각이 흔들렸다. 그의 말은 단순했다. 이 세상에 완전히 아프기만 한 사람도, 완전히 건강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몸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 하고, 질병은 그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증상을 약으로 덮기 전에, 몸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의 첫 단추는 체액이다
건강에 관심이 생기면 대부분 영양제부터 찾는다. 나도 한동안 그랬다. 그런데 이지 약사는 여기서 순서가 틀렸다고 말한다.
세포가 메마른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영양소도 흡수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어 있는 위장을 긁어댈 뿐이라는 것이다.
치유의 첫 단추는 체액, 즉 몸속의 물을 확보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체액 비율은 70%에서 50%까지 줄어드는데, 이 자체가 노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체액을 담는 그릇은 근육이라서, 근육이 적고 지방이 많을수록 몸은 더 쉽게 마른다.
손발이 찬 사람들이 흔히 혈액순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지 약사의 설명은 달랐다. 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혈액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해서 손끝 발끝까지 닿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상태에서 혈액순환제나 뜨거운 보양식을 먹으면 엔진 오일도 없이 액셀을 밟는 것과 같아서 몸이 더 빠르게 마르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체액을 어떻게 채울까. 의학 자료에 따르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는 적당한 염분이다. 맹물만 많이 마시면 삼투압 때문에 오히려 몸속 소금기가 빠져나간다. 콩나물국, 미역국, 황태국처럼 삼삼하고 따뜻한 국물이 세포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둘째는 단백질과 콜라겐이다. 세포와 세포 사이를 채우는 세포 간질액, 쉽게 말해 몸속 물탱크의 벽을 이루는 것이 단백질과 콜라겐이다. 단백질은 몸에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매 끼니마다 생선, 해물, 부드러운 육류 형태로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셋째는 체액 도둑을 멀리하는 것이다. 커피, 술, 탄산음료는 강한 이뇨 작용으로 몸의 수분을 쥐어짠다. 피곤하다고 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술을 찾는 일상이 결국 몸을 더 메마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뜨끔했다.
자율신경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우리 몸과 마음은 따로 놀지 않는다. 마음의 신호는 감정으로, 몸의 신호는 증상으로 나타나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호르몬이다.
현대인의 질병 대부분은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항진된 상태, 즉 액셀은 밟히고 브레이크는 잠긴 상태에서 비롯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체액이 부족해지면 뇌는 생존 모드에 돌입하고 코티솔이 폭발한다. 이 상태에서는 머리카락을 기르거나, 손발을 따뜻하게 하거나, 성호르몬을 만들 여유 따위는 사라진다. 탈모, 수족냉증, 생리불순이 모두 연결된 이야기인 셈이다.
소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감신경이 켜지면 소화기관으로 가는 혈액이 끊기면서 소화액이 마르고, 만성 소화불량이 시작된다. 코티솔은 혈당 조절에도 개입해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는데, 이것이 당뇨,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봄가을마다 흐르는 알레르기 비염에 대한 설명도 인상 깊었다. 콧물은 코 세포가 죽지 않으려고 치르는 사투라는 것이다. 체액이 부족해 코가 마르면 면역세포가 히스타민을 보내 혈관을 확장하고 물을 실어 나른다. 그 과정에서 콧물이 쏟아지는 것인데, 여기에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물 공급을 끊어버리는 셈이 된다.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비염이 만성화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한다.
약은 도구일 뿐, 진짜 명품은 내 몸이다
이지 약사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이 있다. "약은 짝퉁이고, 진짜 명품은 내 몸"이라는 것이다.
약은 몸이 일시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물질을 대신 넣어주거나, 과한 반응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질병을 고치는 주체는 약이 아니라 몸의 자연 치유력이다. 그런데 몸은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기능을 서서히 내려놓는다. 수면제를 먹으면 스스로 잠드는 능력이 줄고, 소화제를 습관적으로 먹으면 위장의 소화 능력이 약해지는 것이 그 예다.
만성질환으로 장기 복용하는 약들도 반드시 잃는 것이 따라온다. 혈관을 넓히는 혈압약은 안면 홍조나 잇몸 부종을 유발할 수 있고, 고지혈증 치료제는 근육통을 부르기도 한다. 소변으로 당을 빼는 당뇨약은 생식기 주변에 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무분별한 항생제와 진통제 남용은 간과 신장을 소리 없이 망가뜨린다.
내가 먹는 약이 어떤 원리로 몸에 작용하는지 알고, 전문가와 상의해 최소한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한 술 뜨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정도 음식도, 편식하지 않는 삶
교감신경을 가라앉히는 데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매운 음식을 줄이고, 찬 음식을 피하고, 내쉬는 숨을 들이마시는 숨보다 길게 하는 복식호흡만으로도 날뛰던 교감신경이 조금씩 안정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감정을 편식하지 말 것. 기쁘고 좋은 감정만 취하고 슬픔, 불안, 미움은 억누르려 하는 것이 마음의 병을 키운다고 이지 약사는 말한다. 외로우면 외로워하고, 슬프면 울고, 화가 났을 때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자율신경을 회복시키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들어가는 화분을 살리려면 물과 햇볕과 시간이 필요하다. 약에 기대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체액을 채우고, 호흡을 고르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이 30년 약사가 약국 안에서 오랜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