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뇌졸중 전문의의 강연을 들으면서 꽤 불편해졌다. 불편했던 이유는 강연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하나씩 뒤집혔기 때문이다. 과일은 건강식이고, 운동은 많을수록 좋고, 살은 무조건 빼야 한다고 —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단백질, 한국인은 얼마나 먹어야 할까
2025년 미국에서 발표된 새 식생활 지침은 단백질 권장량을 체중 1kg당 하루 1.2~1.6g으로 높였다. 체중 60kg 기준이면 하루 72~96g이다. 기존 권장량인 0.8g의 거의 두 배다.
나도 처음엔 '그럼 더 먹어야겠네' 싶었다. 그런데 이게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국의 전통 식단은 채소와 탄수화물 비중이 높고, 특히 노인층은 국밥·칼국수·수제비처럼 부드러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선호한다. 실제로 한국 노인의 단백질 섭취 실태를 보면, 기존 권장량인 0.8g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영양학회의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 따르면 성인 단백질 권장량은 체중 kg당 0.91g이다. 미국 기준의 두 배를 갑자기 적용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0.9~1.0g 수준을 목표로 삼는 것이 한국인에게 더 맞는 접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과일이 밀가루보다 살찌는 데 더 나쁘다고?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나는 밥이나 빵을 줄이면서 과일로 대신하는 게 현명한 다이어트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탄수화물의 대사 경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탄수화물은 소화 과정에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된다. 이 둘을 합쳐 단순당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과당이다. 포도당은 에너지원으로 비교적 곧바로 쓰이지만, 과당은 간에서 지방으로 전환되는 경로로 우선적으로 처리된다. 적게 먹어도 일정 비율이 지방으로 축적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임상영양학회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과당은 포도당에 비해 간내 지방 합성을 유의미하게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백미나 밀가루의 주성분인 포도당은 적정량 섭취 시 지방으로의 전환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과일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다. 다만 비만이나 당뇨를 관리 중이라면, 과일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혈관을 망가뜨리는 3가지 —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혈관 건강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동맥경화증이다. 혈관벽 안쪽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이 과정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공통 출발점이다.
동맥경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3대 위험 요인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다. 고혈압은 혈관벽에 지속적인 물리적 손상을 주고, 그 틈으로 콜레스테롤이 파고들면 염증 반응이 시작된다. 당뇨는 그 염증을 증폭시킨다. 세 가지가 함께 있으면 혈관 노화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빨라진다.
내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건, 혈관 건강이란 결국 이 세 가지 수치를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정상 범위에서 유지하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고지혈증 약 스타틴, 먹어야 할까
스타틴은 심뇌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검증된 약이다. Lancet에 발표된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약 17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이 심혈관 사건 발생률을 유의미하게 줄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
그런데 주변에서 스타틴을 먹다가 끊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몸이 이상한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 느낌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스타틴은 근육 세포막 보수에 필요한 콜레스테롤 합성도 함께 억제하기 때문에, 근육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수면 중 다리에 쥐가 자주 난다면 스타틴의 근육 관련 부작용을 의심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와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다. 부작용이 느껴진다면 숨기지 말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복용 지속 여부와 대처 방법을 함께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착각
나도 한때 운동을 하면 할수록 건강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심장에 무리를 준다. 실제로 마라톤 선수나 고강도 운동을 장기간 지속한 사람들에서 심방세동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운동도 과유불급이다.
뇌졸중 재활 환자에게 권장하는 최소 기준은 하루 7,000보 이상 걷기다. 일반인도 이 수준의 유산소 운동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50대 이후라면 근육량 유지를 위해 가벼운 무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단, 처음부터 무리하게 강도를 높이는 것은 금물이다. 체력에 맞게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60세 이후엔 다이어트를 조심해야 한다
BMI와 사망률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들은 꽤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NCI의 캐서린 플레갈 박사팀이 수백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구간은 BMI 25~35, 즉 과체중 범위였다. 이른바 '비만 패러독스'다.
특히 60세 이후 심뇌혈관 질환을 겪은 환자에게 무리한 체중 감량은 오히려 위험하다. 체내에 저장된 지방과 근육은 재활 과정에서 에너지원이자 버퍼 역할을 한다. 실제로 갑작스러운 고강도 재활 운동으로 인한 사망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나이 든 이후의 건강 관리 목표는 '살 빼기'가 아니라 '균형 유지'여야 한다.
위고비·마운자로, 정말 믿어도 될까
GLP-1 계열 약물인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원래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다. 우리 몸이 식사 후 분비하는 포만감 호르몬인 인크레틴을 모방해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다. 기존 식욕억제제처럼 뇌를 직접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구토, 심한 변비, 소화 장애, 무기력감이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며, 드물게 췌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NEJM에 실린 세마글루타이드 임상 연구에서도 위장관 부작용이 유의미하게 보고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약에만 의존하면 약을 끊는 순간 요요가 빠르게 온다는 점이다. 식습관과 생활 방식의 변화 없이 약만으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약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강연을 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건강에 관한 '상식'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불안한 근거 위에 서 있었다는 것. 과일이 좋고, 운동이 많을수록 낫고, 살은 무조건 빼야 한다는 믿음 — 그 어느 것도 데이터 앞에서는 단순하지 않았다. 내 몸의 신호를 읽고, 숫자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습관. 그게 결국 가장 오래가는 건강법이 아닐까.
참고 자료
- Flegal KM, et al. "Association of All-Cause Mortality With Overweight and Obesity Using Standard Body Mass Index Categories." JAMA. 2013;309(1):71–82.
- Baigent C,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more intensive lowering of LDL cholesterol: a meta-analysis of data from 170,000 participants in 26 randomised trials." Lancet. 2010;376(9753):1670–1681.
- Marso SP, et al. "Semaglutide and Cardiovascular Outcomes in Patients with Type 2 Diabetes." NEJM. 2016;375:1834–1844.
- 한국영양학회.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세종: 보건복지부; 2020.
- Stanhope KL, et al. "Consuming fructose-sweetened, not glucose-sweetened, beverages increases visceral adiposity."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2009;119(5):1322–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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