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이마 화장 속에 숨겨진 병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유난히 짙게 그리시던 이마 화장이 함께 생각난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이마에는 하얗게 색이 빠진 반점이 자리 잡았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 보셨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짙은 화장으로 그 부분을 가리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남들 눈에 띄는 것이 그렇게 신경 쓰이고 마음을 힘들게 하는 병이었다.
그 병의 이름이 백반증이라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오늘은 어머니를 오래 괴롭혔던 이 병에 대해, 의학 자료를 토대로 제대로 정리해 보려 한다.
백반증이란 어떤 병인가
백반증(白斑症, Vitiligo) 은 피부에서 색소를 만드는 멜라닌 세포가 사라지면서 그 부위가 하얗게 변하는 질환이다. 멜라닌은 우리 피부와 머리카락에 색을 입혀 주는 색소인데, 이 색소를 만드는 공장 역할을 하는 멜라닌 세포가 파괴되면 색소가 만들어지지 않아 피부가 하얗게 탈색되는 것이다.
탈색되는 부위에는 여러 크기의 둥근 또는 불규칙한 모양의 색소가 빠진 흰 반점이 나타난다. 때로는 흰 반점의 경계부가 오히려 검게 나타나기도 한다. 흰 반점이 나타나는 것 외에 다른 자각 증상은 거의 없고 아주 드물게 병변 부위가 가렵거나 따끔따금한 경우도 있다
백반증은 나타나는 형태에 따라 한 부위에 하나 또는 수개의 흰 반점이 생기는 국소형, 몸의 한 면을 따라 띠처럼 생기는 분절형, 전신에 넓게 퍼져 나타나는 전신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얼굴과 손발의 끝 부위에 주로 생기는 말단 안면형이 있다. 최근에는 간단히 분절형과 비분절형 복합형으로만 나누기도 한다.
분절형 백반증은 피부 분절을 따라 신체 일부에 국소적으로 발생하며 1-2년 정도 크기가 커질 수 있지만 대개 처음 발생한 형태 그대로 있고 더 이상 번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신형 백반증 경우는 변화가 심하여 몇 년 동안 변화 없이 그대로 있다가도 수년 후 갑자기 번질 수 있다.
백반증에는 하얀 털 (백모)이 잘 생기기도 하며 간혹 모발의 탈색이 제일 처음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백반증은 미용상의 문제이며 대개 내과적 질환과는 관련성이 없고 전염되지 않는다.
백반증은 주로 얼굴, 손, 발, 무릎이나 팔꿈치 같은 뼈 돌출 부위, 입·코·눈 주위에서 종종 시작된다. 어머니처럼 이마나 얼굴에 생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개 통증이나 가려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순한 색소 문제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한 가지 짚어 둘 점은, 이름이 비슷한 '백선(白癬)'과는 전혀 다른 병이라는 것이다. 백선은 곰팡이 감염으로 항진균제를 바르면 보통 2~3주 안에 낫지만, 백반증은 면역과 관련된 만성 질환이라 치료가 훨씬 까다롭다.

백반증은 왜 생기는가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자가면역설이다. 우리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멜라닌 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착각해 공격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백반증 환자에게서 멜라닌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자가항체가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유전적 소인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약 30% 환자에서 가족력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또한 백반증은 갑상선 질환, 당뇨병, 원형 탈모증 같은 다른 자가면역 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몸 전체의 면역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치료 방법 — 왜 그렇게 낫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여러 치료를 받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셨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백반증은 멜라닌 세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즉 발생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가 높은 병이다. 이미 세포가 소실된 뒤에는 색을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치료는 크게 세 축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약물 치료다. 병이 계속 번지는 활동성 백반증에서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국소 스테로이드 크림, 타크로리무스·피메크로리무스 같은 칼시뉴린 억제제, 비타민 D 유도체 크림 등을 사용한다. 둘째는 광선 치료다. 특히 308nm 엑시머 레이저는 특정 부위에 빛을 집중 조사해 색소 회복을 돕고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 셋째는 생활 습관 교정으로, 스트레스 관리와 충분한 수면, 항산화 식품 섭취가 도움이 된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얼굴이 몸통이나 팔다리, 손발보다 치료 반응이 가장 좋은 부위라는 점이다. 어머니 세대에는 지금 같은 치료법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백반증 부위, 자외선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백반증이 생긴 피부는 멜라닌이 없어 자외선 방어막이 사라진 상태다. 그래서 햇볕에 노출되면 일반 피부보다 훨씬 쉽게 화상을 입고, 장기적으로는 피부암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나 양산으로 가려 자외선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염색제나 강한 세정제 같은 자극성 화학물질은 피하고, 마찰이 잦은 부위는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얀 반점이 처음 보일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조기에 피부과를 찾는 일이다. 어머니처럼 오래 화장으로만 가리며 마음고생하지 않으려면, 초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백반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신경 쓰이게 하는, 마음을 무겁게 하는 병이다. 어머니가 겪으셨던 그 고통을 이제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참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건강정보(백반증),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백반증), 세브란스병원 건강정보, MSD 매뉴얼 일반인용(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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